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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의 소설 해방전후 평론 해석 해설

by bloggerkim2 2024.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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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학쿨러입니다.

오늘은 현대소설 중 이태준의 소설 해방전후 평론 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대소설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0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이태준의 소설 해방전후 평론

이태준의 소설 해방전후 평론

 

 

이태준의 소설 해방전후 평론 해석 해설

이태준의 소설 해방전후 평론 해석 해설입니다. 

 

이태준의 소설, 해방전후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역사상 중대한 전환점이었고, 많은 작가들이 이 시기를 배경으로 작품을 썼습니다. 이태준의 중편소설 <해방전후>도 그중 하나입니다.

<해방전후>는 반성과 희망이 교차하는 민족사의 갈림길을 배경으로 작가 자신의 행적과 사유를 기록한 자전소설이자 보고문학입니다. 소설은 해방 전과 후에 정확히 절반씩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인 소설가 '현'은 일본 관헌의 압력에 못이겨 대동아전기의 번역에 손을 빌려준 일을 두고 괴로워하다가 강원도 어느 산읍에 처박혀 낚시질 따위로 세월을 기다립니다.

이곳에서 그는 향교의 직원인 전통 선비 '김직원'을 만나 시국담을 주고받으며 울분을 나눕니다. 일제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서는 의견이 일치했던 두 사람은 그러나 막상 해방과 함께 그 적이 사라지자 현격한 견해의 차이를 내비칩니다. 철저한 근왕주의자인 김직원과 반봉건 근대화론자인 현은 해방 조국의 미래 설계를 놓고 갈라서게 되는 것입니다.

해방정국의 최대 쟁점이었던 신탁통치에 대한 평가도 두 사람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김직원의 완강한 반대 입장을 비실제적이라고 치부하면서 현은 신탁통치가 과학적이고 세계사적인 견해라고 믿습니다.

이태준은 당시 남로당을 필두로 한 좌파의 노선을 좇아 찬탁 쪽에 섰습니다. 이는 그가 순수문학 그룹인 구인회를 결성했던 과거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해방 직후 문학가동맹의 부위원장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월북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그가 궁극적으로 숙청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 <해방전후>는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의 현이 작가 이태준 자신의 가탁임을 상기하면, 그의 찬탁 입장과 월북 결정은 많은 의문을 남깁니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서는 막연한 희망과 활기가 보입니다. 이는 당시 이태준의 기분을 말해주는 것일 것입니다.

"바람이 아직 차나 어딘지 부드러운 벌써 봄바람이다. 현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회관으로 내려왔다. 친구들은 '프로예맹'과의 합동도 끝나고 이번엔 '전국문학자대회' 준비로 바쁘고들 있었다."

이를 해방공간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단편소설 <역려>의 마지막 문장들과 비교해 봅시다.

"비는 오고. 다음 차가 언제 있을지 모르는 차를 우리는 음산한 정거장에서 민망히 기다려야 하였다."

해방이라는 동일한 조건을 받아 놓고 이태준이 보이는 낙관과 채만식이 내비치는 주저와 회의 사이에는 얼마나 너른 간격이 가로놓여 있는가. 그 두 가지 태도의 차이가 결국 이태준의 월북과 채만식의 낙향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으리라.

<해방전후>의 전반부에서 현이 마음의 평화를 찾아 숨어든 곳은 경기도 이천군 안협면, 지금은 휴전선 북쪽입니다. 이태준의 고향인 강원도 철원군 산명리 역시 휴전선 너머에 있으며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철원군 율이리는 민통선 안에 있습니다. 상허와 고향 전의 자취를 좇는 여정은 따라서 분단현실을 확인하는 기회가 됩니다.

해방기를 그린 소설의 무대가 바로 분단의 현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해방이 약속했던 기회와 희망이 거꾸로 분단이라는 위기와 질곡으로 뒤바뀌어 버린 민족사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휴전선 이남에서 안협과 산명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은 민통선 안쪽의 구철원입니다. 이곳에는 노동당사, 월정리역, 철의 삼각전망대, 샘통 철새도래지 등이 있습니다. 민통선 출입을 관할하는 제5검문소를 지나 들어가면 노동당사 건물이 우뚝 서 있습니다.

노동당사는 전쟁으로 인해 뼈대만 남았습니다. 벽에는 미군 이름과 함께 '서태지 만세', '북조선사회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등의 낙서가 남아 있습니다.

노동당사에서 철새도래지와 옛 철원역터를 지나 월정리역과 철의 삼각지 전망대에 이르는 길에는 철원평야의 광활한 논과 밭이 펼쳐집니다. 낙석과 지뢰 주의 표지판이 보입니다.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보면 안협이 아련히 보이는 듯도 합니다.

군인들의 구호와 대남·대북방송 소리가 바람에 실려오지만, 무력대치의 긴박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분단의 현장입니다. 민족의 완전한 해방은 여전히 유예되고 있으며, 전쟁은 아직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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