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현대시 중 나희덕의 시 음지의 꽃 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대시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영원성에 대한 동경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나희덕의 시 음지의 꽃
나희덕의 시, 음지의 꽃
우리는 썩어가는 참나무떼,
벌목의 슬픔으로 서 있는 이 땅
패역의 골짜기에서
서로에게 기댄 채 겨울을 난다 / 벌목의 슬픔으로 썩어가고 있는 참나무
<시어의 의미>
*패역의 골짜기 : 참나무가 생명력을 잃고 서 있는 장소
*바람 :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홀씨들의 생명력을 깨우는 존재
*잠자는 홀씨들 : 새로운 생명력을 갖고 있는 존재
*버섯 : 시련과 고난 속에서 생명력을 탄생시키는 강인한 존재
*낙엽, 바람 : 버섯이 처한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존재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역설적, 예찬적
▶주제 : 존재의 유한성을 초월한 영원성에 대한 동경
▶특징
특정 상황을 통해 내면을 드러냄
대상(나무)에 삶의 의미를 투영
현재형 어미를 활용하여 시적 상황을 현장감 있게 그리고 있다.
의인법을 활용하여 화자와 그 주변이 처한 시적 상황을 드러냄
역설적 표현을 통해 대상에 대한 예찬을 드러냄
이해와 감상
나희덕은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同)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시 「음지의 꽃」은 1991년에 출간된 첫 시집 『뿌리에게』(창비)에 수록되어 있다.
나희덕의 시는 상처투성이의 연약하고 소외된 존재들을 모성적 본능으로 감싸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작품이 많다. 이 시가 바로 그렇다. 이 시의 화자는 “썩어가는 참나무떼”이다. 일반적으로 꽃은 생명을 상징하며, 따라서 햇빛이 잘 드는 양지에서 피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우리는 음지에 위치하고 있다. 음지는 소외된 존재의 장소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자신을 포함한 우리가 “벌목의 슬픔으로 서 있는 이 땅에서 썩어가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런데 화자는 음지에서 함께 썩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서로에게 기댄 채 겨울을 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비록 음지가 “패역의 골짜기”처럼 버려진 공간으로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썩어가는 참나무떼”가 제 각각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진술한다. 이 함께의 의미가 이어지는 진술을 떠받치고 있다.
즉 화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조건을 “바람은 더 높은 곳에서 우리를 흔들고”처럼 가혹한 현실로 인식하면서도, 그 가혹한 바람이 “잠자던 홀씨들”을 일깨워 “우리 몸에 뚫렸던 상처마다 버섯이 피어난다”처럼 희망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그린다. 화자가 “황홀한 음지의 꽃”이라고 부르는 것은 버섯이다. 시인은 왜 따뜻한 양지에서 아름답고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꽃이 아니라 음지에서 힘겨운 조건을 극복하고 꽃을 피우는 버섯을 시적 대상으로 삼았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 곧 시인의 시 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이 버섯이라는 소재를 통해 표현하려는 바는 고통과 절망적 현실을 긍정적인 가능성으로 바꿔내는 생명의 힘이다. 시인은 이 생명력을 음지의 꽃, 그러니까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명에의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는 버섯이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1012행에서 화자버섯이 썩어가는 우리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소나기처럼 갑작스럽게 피어남으로써 고통을 멈추게 하는 장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시인은 지속적으로 양지가 아닌 음지, 소외받고 상처 입은 존재들을 응시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상처에서 버섯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시인은 상처를 꽃으로 승화시키는 버섯의 생명력, 이 반전 드라마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참나무떼의 상처의 크기와 깊이는 얼마나 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작품의 후반부에서 화자는 이 버섯이 “우리의 몸을 / 뿌리 없는 너의 독기로 채우는구나”처럼 나무 전체를 뒤덮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것은 낙엽과 구름으로도 덮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으나, 지금 버섯이 우리참나무 전체를 온통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 저절로 손에 힘이 생긴다. 왜냐하면 그동안 오직 양지의 꽃만을 꽃으로 간주해온 시선들이 이 시를 읽음으로써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편, 버섯이 “우리 몸에 뚫렸던 상처마다”에서 피어난다는 발견은 이 시의 성과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 왜냐하면 이 진술을 통해 우리는 시(詩)가 상처에서 피어난다는, 그러니까 상처의 승화가 곧 시(詩)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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